안녕하세요, 나영 입니다.

오늘도 역시 여느 때와 같은 하루입니다. 아직은 시럽의 농도가 잡히지 않아 물처럼 조르륵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꾸덕한 질감을 내기 위해 시럽의 농도를 한 번 더 잡아봅니다. 불을 켜고, 한 번 끓은 후 중약불로 줄여 10분간 뚜껑을 열고 천천히 끓였어요. 매일 조금씩 더 끓이는 방법이 안전하지만 역시 저는 성격이 조금 급하고 열정적이지만 주의력이 떨어지는 ENTP (엠비티아이와마롱글라세가무슨상관이냐면사실아무상관도없습니다)! 시간이 완성하는 아름다운 단맛이지만 조금의 지름길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밤을 직접 까는 대신 깐밤을 쓰는 일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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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분 사이로 끓일때는 사실 타이머를 맞춰 놓고 딴청을 피웁니다. 보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남은 와인을 한 잔 따라 마시기도 하구요. 하지만 10분을 끓이기로 결정한다면, 냄비에서 그 10분간 눈을 떼지 않아야 합니다. 시럽이 생각보다 빨리 졸아들면 공기중으로 노출된 윗부분에 시럽이 배지 않고, 바닥 부분의 밤이 눌어붙을 수 있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예의주시하며 밤과 나의 시간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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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졸이다 보면 냄비 가장자리에 거뭇한 자국들이 생기는데, 여기 바닐라빈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아까우니까 나무 숟가락으로 슥슥 긁어서 시럽으로 복귀시켜주세요. 한 알 한 알이 아까운 바닐라빈인데!이기도 하지만 윗쪽에 붙어있는 것들이 많으면 익히는 과정에서 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면 탄맛이 마롱글라세에 배는 수가 있으니, 미리 조심하기로 해요.

하지만 오늘은 왠지 맛을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끓이기 전과 후를 모두 비교하려고 작은 조각 하나를 먼저 꺼내두었어요. 그리고 끓이고 나서도 하나를 꺼내서 맛을 보았습니다. 밤 탄수화물 특유의 가루지는 맛이 확실히 덜해졌습니다. 시럽이 배어들고 있다는 증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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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용 밤을 꺼내다가 아주 예쁘게 졸여지고 있는 밤을 발견했어요. 색이 약하게 투명해졌고, 노란 빛도 아름답게 도네요. 이 친구는 아마 이 모습 그대로 끝까지 여정을 마칠 수 있을 거에요. 그럴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요. 정말 예쁜, 마롱글라세다운 마롱글라세가 되겠네요. 앞으로 이 친구를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다른 밤보다 아주 조금 더 귀여워하려구요. 시럽에 조금 점도가 생겼어요. 앞으로 이 밤들과 몇 번의 밤을 더 함께하게 될까요? 이 밤은 어떤 추억을 저에게 선물해줄까요? 연애를 하는 것 처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의 일기를 마칩니다.

그럼, 여러분 좋은 밤, 그리고 좋은 아침입니다.

나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