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영 입니다.

2kg의 밤과 2kg의 시럽이 냄비 안에서 하룻동안 잠을 잤습니다. 아직까지는 밤 자체의 투명도나 색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노란 밤들이 갈색의 시럽 안에 누워있습니다. 따뜻해진 시럽을 가득 머금고 천천히 식은 이 시기의 밤은 굉장히 연약합니다. 밤을 까는 과정에서나 밤 자체에 균열이 있었다면 대부분 첫 2~3일 사이에 다 깨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쪼개지는 밤들이 저를 슬프게 하네요. 아무렴 제 운명이려니...하는 수 밖에는 없어요. 하지만 가능하면 조심스럽게 밤을 다루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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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를 올리고 가열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센 불로 끓이면 돼요. 시럽이 끓어오르는 순간 불을 줄인 후 5분간 은근하게 끓여주세요. 은근하게 가열한다는 것이 참 애매한 말이죠. 사람마다 은근함의 기준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집마다 화력에 큰 차이가 있다보니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리를 계속 해나가다 보면 '적당함' '은근함' 같은 추상적인 표현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생깁니다. 기준을 세울 때는 사진보다 영상이 도움이 되어요. 레시피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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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영상을 준비했어요. 영상을 확인하면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기가 쉬우실거에요. 끓어 넘치지 않도록,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정도로 끓여주세요. 팔팔 끓이면 사실 더 빨리 완성될텐데, 그것조차도 밤에게 충격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밤을 원형 그대로 남기기 위한 노력이죠. 설탕이 바닥에 가라앉아있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도구를 사용해서 밤을 뒤적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끓으면서 시럽이 이동하는 것에 따라 밤도 같이 위아래로 섞이니까요. 다만 시럽 위로 떠올라서 잠겨있지 않은 밤이 있다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이용해 시럽 사이로 밀어넣어주세요.

5분이 지나면 그대로 뚜껑을 닫고 다시 식힙니다. 저는 타이머를 맞추는 것을 좋아해요. 타이머가 "띠디디디"하는 소리를 내는 타이밍에 맞춰 물 흐르듯 오른손으로 타이머를 끄고, 왼손으로 불을 끕니다. 아무래도 서늘한 곳에서 식히는 것이 좋은데, 요즘같은 계절엔 베란다나 창가에 놓기만 해도 괜찮아요. 잘 상하지 않는 품목이기도 하고, 시럽 자체의 당도가 높은편이라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24시간 기준으로 시럽을 졸일 예정이라, 첫 시작을 언제 하는지에 따라 밤을 졸이는 마음이 조금 달라지곤 해요. 저는 프리랜서라 낮에도 보통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지만 새벽 1시쯤 밤을 졸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 살아서 그런지 조금 외로워질 때가 있어요. (강아지가 있기는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밤을 들여다보고,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나서 저도 잠자리에 들면, 왠지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3~5분, 짧은 시간동안 단 냄새가 가득 밴 수증기를 뿜으며 보글보글 끓는 시럽을 보면서 오늘의 내게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거나, 털어냅니다. 뚜껑을 덮는 순간 제 걱정의 스위치도 끕니다.

오직 밤과 시럽과 나만이 남는 새벽은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그래서 새벽에 밤을 졸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 만나요" 같은 인사를 하고 잠에 듭니다. 지금 살짝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맨살을 감싸는 밤공기가 기분좋게 차갑네요. 이 공기가 밤새 마롱글라세가 되어가는 밤을 천천히 식혀줄테죠. 내일의 밤은 얼마나 달라져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럼, 여러분 좋은 밤, 그리고 좋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