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영 입니다.

갑작스럽게 마지막 레터를 쓰게 되었습니다. 밤을 건져낼 때가 되었거든요.

원래는 시럽에서 건져내 채반에서 2~40분 동안 두어 시럽을 건져내고, 70~80도 오븐에서 1시간정도 천천히 말리듯이 구워줘야 해요. 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키듯, 달라붙지 않게 넓게 펼쳐서 구워야 하고요. 그래야 마롱글라세의 겉 부분에 얇은 설탕 막을 입힐 수 있거든요. 약간 덜 구워서 촉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저는 씹었을 때 파삭함이 느껴지는 식감을 좋아해서 저온에서 조금 더 굽습니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밤 표면의 시럽이 불투명하게 굳기 시작해요. 만약 그렇게 되면 트레이를 바로 꺼내서, 오븐을 온도를 낮춰서 식힌 후에, 다시 트레이를 넣고 밤을 말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싸개지로 포장을 하면 되죠.

주의할 점은, 에어프라이어가 아니고 오븐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에어프라이어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온도가 대체로 너무 높고, 열이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제가 시간과 온도를 정확히 체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오븐으로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과정컷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저는 마롱글라세를 완성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굽지 않기로 했어요. 레터를 하루 쉬어갔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어요. 고민을 조금 해야 했거든요. 환자에게 어떤 수술법이 가장 맞을지 고민하는 의사처럼, 밤을 두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완성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상태로 너무 완벽하게 맛있기 때문입니다.

밤은 시럽과 함께 보관하겠지만, 몇 개나 온전히 살아남았는지는 너무 궁금하니까 꺼내서 세어보았어요. 한 10개쯤이려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세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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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개에 가까웠던 밤 중에 22개가 살아남았네요. 최애밤이라고 불렀던 밤이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밤 한 알 한 알이 소중하고 예쁘고 귀여워요. 밤을 건져내는 내내 웃고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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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단밤은 조직이 치밀하고 밤의 향이 굉장히 좋은 밤입니다. 단단한 조직 덕분에 밤이 깨지면서도 부스러지는 부분 없이 형태가 유지되어요. 덕분에 올해는 엄청난 맛과 향의 밤시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밤의 치밀한 조직 때문에 시럽이 안까지 완벽하게 배어들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시럽을 덜어내는 대신, 시럽과 함께 밤을 유지하면 더 좋은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어요.